경흥스님은 성이 수씨이며 웅천주 사람으로 열여덟 살에 출가해 승려가 됐는데 불교경전에 통달해 당시에 명망이 매우 높았습니다.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신문왕을 부르더니 경흥스님을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흥법사는 국사가 될 만한 사람이다. 내 명을 잊지 말도록 해라.”

문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문왕은 명을 잊지 않고 경흥스님을 국로로 책봉했습니다. 그런데 경흥스님이 국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한 달이 넘도록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인도 모르는 병을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비구니 스님이 문안을 오더니 〈화엄경〉 속의 ‘착한 벗이 병을 고쳐준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스님의 병은 마음 속 근심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기쁘게 웃으면 병은 곧 나을 것입니다.”

비구니 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경흥스님 앞에서 열한 가지 모습의 우스운 춤을 추었습니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춤의 모습이 너무나 우스워서 웃다가 턱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웃고 나니 경흥스님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다음은 경흥스님이 문수보살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경흥스님 일행이 동문 밖에서 대궐로 들어갈 채비를 차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화려한 말과 안장에, 멋진 신과 갓을 제대로 갖춘 경흥스님 일행은 누가 봐도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때 몹시 어수룩한 차림의 스님 한 분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등에는 마른 물고기가 가득 든 광주리를 지고 길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경흥스님의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승복을 입은 사람인데 어찌 그리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지니고 있는가?”

그 스님이 빈정대듯 말했습니다.

“산고기를 두 다리 사이에 낀 것보다는 낫지 않소?”

그는 이 말만 남기고 벌떡 일어나 가 버렸습니다.
이때 마침 문을 나오던 경흥스님이 그 말을 들었습니다. 경흥스님은 얼른 사람을 시켜 그 스님을 쫓아가게 했습니다. 스님은 남산 문수사 문 밖에서 광주리를 버리고 숨었는데, 그가 짚었던 지팡이는 문수보살상 앞에 있었습니다. 광주리 속을 보니 그가 가지고 있던 마른 고기는 다름 아닌 소나무 껍질이었습니다.
스님을 쫓아갔던 사람이 달려와 이 사실을 아뢰니 경흥스님이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문수보살께서 내가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을 경계한 것이구나.”

그 뒤로 경흥스님은 죽을 때까지 말을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경흥스님은 항상 걸어서 입궐했고 민중과 동고동락하는 삶을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과연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는 무엇일까요? 경흥스님의 일화는 현대 사회의 리더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당시 경흥스님은 왕마저도 어려워 한 최고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런 지위의 사람이 말을 버렸다는 것은 스스로 한없이 낮아질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