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중앙포교원장 대은스님

신라 신문왕 때의 대덕 경흥스님은 18세에 스님이 돼 수도정진 끝에 삼장에 통달해 당대에 명망이 높았습니다.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신문왕에게 뒷일을 부탁하면서 “경흥법사는 국사가 될 만하니 내 뜻을 잊지 말라”고 할 정도였죠.

훗날 신문왕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경흥스님을 바로 국사로 책봉하고 경주의 삼랑사에 주석케 했습니다.
경흥스님이 어느 날 왕궁으로 들어가려고 말을 매어놓은 하마대(下馬臺) 앞을 지나는데, 한 거사가 지팡이를 손에 짚고 마른 물고기를 담은 광주리를 등에 지고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었습니다. 이에 그를 지켜본 시종 하나가 그 거사를 꾸짖기를,

“너는 중의 옷을 입고 어째서 금하는 부정한 물건을 짊어지고 있느냐?”
그러자 거사가 말하길,
“두 다리 사이에 산 고기를 끼고 있는 것보다 시장의 마른 물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무에 나쁘랴?”
그리고 거사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 때 경흥스님이 문을 나오다 그 말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거사의 뒤를 좇게 했더니 거사는 남산의 문수사에 이르러 광주리를 내던지고 숨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팡이는 문수보살상 앞에 놓여졌고, 마른 물고기는 어느새 소나무 껍질로 변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시자가 와서 이 사실을 알리니 경흥스님은 탄식하며 말하길,
“문수 대성이 와서 내가 말 타는 것을 경계하셨구나.”
그 후로 스님은 종신토록 말을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짧은 일화는 우리에게 분수에 맞는 생활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승려의 신분으로 아무리 국사라는 높은 위치에 올랐다고는 하더라도 그 특권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행동을 하면 옳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일반 재가불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집니다.

한 여성불자가 저의 절에 찾아왔습니다. 그 보살은 근래 자신의 힘든 사연들을 털어놓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위로받고자 저를 찾아왔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온 몸에선 진한 향수냄새를 풍기고 진한 화장에 고급 명품 옷과 가방을 휘감고 눈물을 훌쩍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저는 그 아픔의 진정성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아름답고 화려한 물신에 열광하는 것 자체를 뭐라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정말 마음이 힘든 사람은 그렇게 타인 앞에서 자신의 재화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게 분수에 넘치는 모습으로 부처님 전에 들었으면서도 제대로 삼배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는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소위 부와 권력을 쥔 층에서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들은 수두룩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불자들만큼은 이를 경계삼아 부처님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며, 또한 그렇기 위해 자신의 부나 권력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것이 얼마나 추하고 덧없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