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에는 아래와 같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수덕 도령이 산야에서 노루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령은 활시위를 당기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노루 옆에 어여쁜 여인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령은 여인을 본 순간이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령은 여인이 누군인지 알아보라고 하인에게 시켰습니다. 하인이 알아본 바 여인은 건넛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 낭자였습니다.

도령은 여인을 찾아가 혼인해줄 것을 곡진하고도 극진하게 청했습니다. 그러자 낭자는 “비명에 돌아가신 어버이의 고혼을 위로할 수 있도록 큰 절 하나 세워 주시면 도련님의 청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조건부 허락을 했습니다. 낭자의 얘기를 들은 이튿날부터 사찰 불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손사래를 치며 반대했지만 도령은 이에는 아랑곳 않고 사찰을 세우는 데 혼혈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불사를 완료한 날 도령은 기꺼운 마음에 날아갈 듯 뛰어서 낭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도령이 집에 다다랐을 때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연기의 행방은 바로 절에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낭자는 다시 도령에게 부탁했습니다.
“여인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일념으로 부처님을 염하면서 절을 다시 지어 주십시오.”

낭자의 부탁에 도령은 결심을 새롭게 하고 다시 절을 세우게 됐습니다. 하지만 일념으로 절을 짓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절이 다 지어갈 무렵 또다시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도령은 다시 절을 짓기 시작했고, 마침내 신비롭기 그지없는 웅장한 대웅전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절이 완성된 것을 보고 낭자는 약속대로 백년가약의 정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신방이 차려졌는데, 특이하게도 낭자는 잠자리를 따로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령은 애끓는 마음에 낭자를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찰나, 돌풍이 일더니 낭자의 모습이 간 데 없어졌습니다. 도령의 두 손에는 버선 한 짝만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도령이 버선을 들여다보는 순간 눈앞에는 큼직한 바위와 그 바위 틈새에 낭자의 버선 같은 하얀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도령은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낭자가 바로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다는 것을.

이 일이 있은 후 수덕 도령은 자신이 지은 절 이름을 수덕사라 칭하고, 수덕사가 있는 산을 덕숭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덕숭산이라는 산명과 수덕사라는 사찰 명을 갖고 젊은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로 푼 것을 봤을 때 구전된 얘기인 듯싶습니다. 화장하고 치장한 도시 여자보다 수수한 촌색시가 더욱 고혹적이듯 이 얘기는 그 풋풋함이 외려 이 설화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설화를 듣고 나면 ‘너와 나 사이 절을 짓더라도 가벼이 풀 잎사귀 절이나 지을 일’이라는 미당 서정주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덕숭 낭자로 화현한 관세음보살이 수덕 도령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면 집착이 생깁니다. 갖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무상한 삶 앞에 온전히 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바로 이 세상의 소유이며, 이 우주는 바로 이 우주의 소유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내 것도 네 것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나도 가벼이 헤어져도 가벼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