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징이 한주 관리로 임명돼 임지로 가는 길에 진부현을 지났을 때였습니다. 느닷없이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더니 한파까지 밀어닥쳐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없게 됐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며 잠시 쉴 곳을 찾는데, 마침 길옆에 초가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신도징은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는 늙은 부모와 어린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처녀는 비록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때가 묻어 지저분했으나 살결이 배꽃처럼 하얗고 얼굴을 곱디 고왔습니다. 두 노인은 신도징이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어서 이리 와서 불을 쬐십시오.”

신도징은 눈보라가 멎기를 기다리며 불을 쬐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저무는데도 눈보라는 여전히 멎지 않았습니다. 신도징은 어쩔 수 없이 하룻밤 묵어 갈 것을 청했고, 이에 노인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신도징은 말안장을 풀고 침구를 폈습니다. 노인의 딸은 손님이 묵자 얼굴을 닦고 곱게 단장을 했습니다. 신도징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그만 반하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신도징은 두 노인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였습니다.
“따님이 아직 미혼이면 감히 혼인을 청하고자 합니다.”

“귀한 손님께서 거두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이 또한 연분이 아니겠습니까?”
신도징은 마침내 사위의 예를 행하고 타고 온 말에 그녀를 태워 길을 나섰습니다.
신도징의 아내는 집안 살림을 잘 돌보았습니다. 아이도 1남1녀를 두었는데 모두 총명했습니다.

신도징은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했고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하여, 신도징은 자신의 마음을 시로 지어 아내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한 번 벼슬하니 매복이 부끄럽고/ 삼년 지나니 맹광이 부끄럽구나/ 이 정을 어디다 비길까/ 냇물 위에 원앙새 같구나.”
그날 아내는 종일 남편이 준 시를 읊었습니다.

어느덧 임기가 다한 신도징은 벼슬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본가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됐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꾸리는 데 아내가 문득 슬픈 얼굴로 전에 준 시편에 하답하겠다며 이렇게 읊었습니다.
“부부의 정이 비록 소중하지만/ 산림에 뜻이 더 깊었네/ 시절이 변하면/ 백년해로 저버릴까 늘 마음 졸였네.”

신도징은 시의 내용이 조금 맘에 걸렸지만 그냥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던 중 신도징은 아내를 처음 만난 초가집에 들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살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집으로 들어가더니 종일토록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후 울음을 멈추곤 벽 모퉁이에 걸린 한 장의 호랑이 가죽을 보곤 갑자기 환하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그것을 뒤집어쓰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내의 갑작스런 변신에 넋을 잃은 신도징은 두 아이를 데리고 구석에 멍하니 피해서서 호랑이가 간 길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그는 며칠을 울며 기다렸지만 끝내 호랑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신도징의 범 각시 설화는 칼 구스타프 융 학파가 말한 ‘늑대여성’ 설화 모티브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야생의 생리를 지닌 여성성이 항상 ‘호랑이 각시’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단군설화에서부터 ‘호랑이 각시’는 등장합니다. 곰 각시는 쑥과 마늘만 먹는 것을 참아 여성으로 바뀌었지만, 호랑이 각시는 끝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로 산야로 돌아갔습니다. 이 호랑이 각시의 후예가 대를 잇다가 신도징의 각시가 된 것일까요?

최근 한 젊은 소설가는 ‘수상한 식모’라는 장편소설에서 호랑이 각시 설화 모티브를 사회전복을 꿈꾸는 언더그라운드 계급으로 묘사했습니다.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은 ‘곰 색시’를 택하면서 너무 순종적인 성격만 강조해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계화 시대에는 ‘호랑이 색시’의 용맹성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태고종중앙종의회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