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중앙포교원장

신라시대의 일입니다. 강원도 철원 땅 보개산 기슭에 큰 배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배나무 아래에는 포식을 한 독사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까마귀가 다른 나무로 날아가려고 나래를 쪽 펴고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 바람에 주렁주렁 달린 배 한 개가 독사의 머리에 툭 떨어졌지요.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은 뱀은 화가 날대로 났습니다. 독기가 오른 뱀은 머리를 하늘로 쑥 뽑아 사력을 다해 독을 뿜어냈습니다. 독기는 까마귀 살 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순간 까마귀는 힘이 쑥 빠지면서 온몸이 굳어짐을 느꼈습니다.

까마귀는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 세게 얻어맞은 데다 독을 다 뿜어 죽어 버렸습니다.
뱀은 죽어서 우직한 멧돼지가 됐고 까마귀는 암꿩으로 변했습니다. 멧돼지는 먹이를 찾아 이산 저산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침 알을 품고 있던 암꿩의 모습이 멧돼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음 전생에 나를 죽게 한 원수놈 이로구나. 저놈을 당장 죽여야지.” 멧돼지는 살며시 등성이로 올라가 발밑에 있는 큰 돌을 힘껏 굴렸습니다.
암꿩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까마귀를 죽인 멧돼지는 속이 후련했습니다.

이때 사냥꾼이 그곳을 지나다 죽은 꿩을 발견했습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꿩을 주운 사냥꾼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단걸음에 오막살이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부부는 그날 저녁 꿩을 잡아 실컷 먹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생겼습니다.

결혼 후 태기가 없던 사냥꾼 아내에게 그달부터 태기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열 달 후 사냥꾼의 아내는 옥동자를 분만했습니다. 두 내외는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웠고 아들은 씩씩한 소년이 되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활쏘기를 익혔습니다. 사냥꾼은 아들이 훌륭한 사냥꾼이 되길 바랐습니다.

어느 날 보개산으로 사냥을 나간 아들은 그날따라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산돼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산돼지는 우람할 뿐 아니라 온몸에서 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힘껏 시위를 당겼습니다. 화살은 적중했습니다. 그러나 금멧돼지는 피를 흘리면서도 여유있게 환희봉을 향해 치닫았습니다.

그는 멧돼지가 숨어있을 곳까지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금돼지는 간 곳이 없고 돼지가 숨어있을 만하 자리에는 지장보살 석상이 샘 속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물 밖으로 내밀고 있었습니다.

까마귀와 뱀의 인과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처님께서 멧돼지로 화현하여 화살을 맞은 까닭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그 자리를 다시 찾은 그는 또 한번 질겁하며 놀랐습니다. 어제 분명히 샘 속에 잠겼던 석불이 어느새 물 밖으로 나와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릎을 치며 석불 앞에 합장을 했습니다. 그는 곧 출가했고, 3백 여 무리를 동원해 절을 짓고 석불을 모셨습니다.
지금도 강원도 철원 보개산에 가면 신라시대 이순석이란 사냥꾼이 지었다는 절 석대암이 있습니다.
불교는 존재의 현상들을 인연의 법칙에 의해서 생성하고 소멸한다고 봅니다.

이런 이치를 깊이 통찰해 사람의 삶에 적용시키고 따른다면 어떠한 성공과 실패에도 그리고 나아가서는 늙고 병들고 죽는일 까지도 기뻐하거나 슬퍼할 것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그러므로 도를 구하고 수행을 하는 문제에 있어서 원인을 가벼이 여기고 결과만을 크게 바란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모든 존재의 현상은 일체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